성씨의 종가

[스크랩] 제8차 슬로라이프답사:가지산, 운문사, 박가네민물장터 답사보고(2)

이채진 2006. 11. 6. 16:43
 

나. 운문사

운문사는 통일신라시대의 고찰이다. 산속에 위치하면서도 평지에 자리잡고 있어 색다른 맛을 주기도 한다. 매표소 입구에 차를 세워 놓고 운문사를 향하다보면 오랜 나이를 먹은 늙은 소나무 숲을 끼고 걸어가게 된다. 너무 늙어서 힘에 겨운듯 도로변으로 들어 누운 소나무 하며, 비바람에 시달려 상처 입은 둥치를 잘려버린 소나무를 옆에 끼고 걸어가는 재미가 참 좋다.

<운문사 입구 솔숲길>

<운문사 초입 돌담장>

운문사는 여느 절처럼 일주문이니, 천왕문이니 하는 문루가 없다. 가지런히 잘 다듬어 쌓아 올린 긴 담을 따라 걸어가다가 왼쪽 편에 종루가 있고 그 안으로 들어서면, 절집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그런데 보통 건물들이 배산임수하여 남향 혹은 동향하여 서 있는데, 이 절의 건물은 운문산(호거산)을 보고 안쪽으로 향한다. 흘러가는 물을 보고 집을 세우면  좋지않다는 풍수에 영향을 받았고 전한다.

집의 배치도 색다르다. 종루를 지나면 천연기념물 쳐진소나무가 보호철책에 둘러쌓여 있고, 그 옆에 만세루라는 낮은 누마루를 가진 꽤나 규모 큰 건물이 서 있다. 그 넓은 마루에 법고 하나를 달랑 품고 서 있는 모습이 시원하기도 하지만 무엇에 쓴 건물인지 의문을 자아내기도 한다.  아마 강당(법당) 등의 다용도 건물이 아닌가 싶다. 

<운문사 경내-절집들이 산을 보고 있다>

<쳐진소나무>

<만세루>

누마루 앞에는 최근에 신축한 대웅보전이 있다. 대웅보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주존불로 한 삼존불이 모셔져 있고 불상 옆에는 보처보살이 자리 잡고 있다. 불단 양옆에는 예천 용문사에서나 볼 수 있는 윤장대가 마련되어 있다.


<대웅보전 불상들>

운문사에서 오래된 절집은 비로전이다. 불행하게도 비로전은 보수중이서 출입을 할 수 없었다. 다만 불전 앞에 서 있는 통일신라시대 쌍 석탑과 석등을 관찰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두기의 석탑은 상층 기단에 8부중을 조각하고 있는데, 동탑의 조각이 더욱 도드라지고, 고색미도 뛰어나다. 출중한 석탑으로 보이나 상층 기단 갑석의 부피와 넓이가 탑의 커기에  비해 작아 육중함을 감해 준다.

<비로전 앞 서탑>

<비로전 앞 동탑>

비로전 앞에는 비구승들의 학당인 승가대학이 있다. 난데없이 그 출입구에 불이문이라는 편액이 붙어 보는 이를 당황시킨다. 그런데 불이문 양옆에 둘러쳐진 돌담장이 기이하다. 누운 갈매기 모양의 기하학적 문양을 연상시키는 이 담은 이곳 스님들이 울력하여 손수쌓은 것이라 하니 그 의미가 남다르다. 비단 이 담장뿐이겠는가? 운문사는 울력으로 노동하고 불법에 정진하는 것을 생활준칙으로 삼는다고 하니, 우리네 전통사회의 공동체의식을 엿볼 수 있는 곳이겠다.

<승가대학 출입구 쪽 돌담장>

담장을 지나오면  그 중간에 관음전을 못미쳐 ‘작압’이라는 편액이 붙은 작은 건물을 볼 수 있다. 이 작은 공간에 운문사의 보물 2점을 보관하고 있다. 작압전은 그 옛날 까치떼의 도움으로 이 절을 지었다는  보양국사라는 창건스님의 설화와 관련 있는 건물이다. 

작압전 안에 통일신라시대 말기의 석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높이 불상 63cm, 대좌 41cm, 광배 92cm. 광배와 대좌를 모두 갖추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호분(胡粉)이 너무 두껍게 입혀져서 원래의 모습을 잘 알 수가 없다. 머리와 높다란 육계에는 나발(螺髮)이 표현되었고, 얼굴은 네모난 편으로 눈·코·입 등이 섬세하지 않고 조그마하게 처리되어 있어 부처의 위엄을 찾아볼 수 없다. 목부분은 거의 표현되지 않아 짧은 편이며 좁은 어깨에는 통견(通肩)의 법의를 걸쳤는데 옷주름선이 형식적이고, 밋밋한 가슴 위로는 승각기가 표현되어 있다. 두 손은 결가부좌한 무릎 위에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취하고 있으나 불신(佛身)에 비해 손이 작고 조각기법이 정교하지 못해 투박한 느낌을 준다. 몸 전체를 감싸고 있는 광배는 두광과 신광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연꽃무늬와 화염무늬가 장식적으로 얕게 새겨져 있다.

불상을 중앙에 두고 양 쪽에는 사천왕상이 조각된 돌기둥이 각각 2점씩 나란히 서 있다. 길다란 석주에 사천왕상을 1구씩 부조로 조각했는데 부분적으로 채색을 칠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석주는 원래의 위치를 알 수 없고 그 용도도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각 상의 이름을 밝히기가 어렵다. 그러나 손에 들고 있는 지물에 의해 대체로 삼고저(三 杵)를 쥐고 있는 제1석주의 사천왕상은 남방의 증장천(增長天)으로 생각되며, 제2석주는 탑을 든 북방의 다문천상(多聞天像), 제3석주는 불꽃[火峰] 또는 꽃가지를 든 서방의 광목천상(廣目天像), 제4석주는 양손으로 칼을 받치고 있는 동방의 지국천상(持國天像)으로 추정된다. 이 사천왕상은 모두 원형의 두광에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있는 무인형(武人形)으로 악귀를 밟고 천의자락을 날리면서 서 있으며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있다. 또한 신체는 장대하지만 대체로 조각적인 양감이 줄어들었고, 서 있는 다리의 자세가 엉거주춤하며 갑옷의 띠주름이 굵어지고 세부표현이 정교하지 못한 점 등은 9세기경의 통일신라 석탑이나 부도에 새겨진 사천왕상과 양식적으로 유사하다.

<작압전 내 석조여래좌상>

<작압전 내 사천왕상 석주>

많은 사람들이 찾아드는 운문사. 새로운 단장에 여념이 없는 운문사. 그러나 너무 세련된(?) 장엄이 무엇인가 기계적 수법에 맡겨진 것 같은 아쉬움을 남긴다. 절집을 물러나는 길에,  자판기 관리에 바쁜 손을 움직이는 비구스님의 모습에 다시 한번 노동과 정진을 겸비한다는 운문사 스님들의 슬로라이프 가르침을 배울 수 있었다.


출처 : 슬로푸드동호회
글쓴이 : 맛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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